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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바랐던 마음, 휴지통에 구겨버린 이유

도쿄운영자 0 10400
[오마이뉴스 곽지현 기자]

이틀 후면 산부인과 병원에 간다. 병원에 가면 초음파 사진을 보게 될 테고 지난 달보다 더 자란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16주째니까 운이 좋다면 성별도 알 수 있겠지? 다른 때보다 병원에 가는 것이 더 기대되고 설렌다.

임신 16주, 이번에 가면 성별 알 수 있을까?

두 달 전 득남한 친구는 '딸을 낳을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성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쉽다고 했다. 또 친구가 아는 어떤 집은 아들을 둘 낳고 딸을 낳고 싶어 아이를 가졌는데 초음파 검사 결과 아들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아직 아들이라 결정지을 수 없지 않나요? 여자가 될 가능성도 있잖아요"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그러기엔 너무 확실히 보여요"라고 말해서 '멘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들 딸 상관없어!!

ⓒ 곽지현

2주 전 시어머님은 주변 사례를 말씀하시며 은근히 손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비치기도 하셨다. 딸이 둘인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사정도 넉넉지 않아 친정엄마와 더부살이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으려고 또 임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집 엄마가 보이지 않아 지나가던 그 집 딸에게 엄마가 아기 낳았냐고 물어보니 "네~낳았어요. 우리 집은 딸딸집이에요~" 하며 노래하듯 대답하고 지나갔단다.

그러고 나서 우리 어머님은 심란해지셨다며 아들을 낳으려 노력하는 다른 집 사례를 또 지나가 듯 말씀하셨다. 심란해지셨다는 그 말이 나의 좌뇌 어딘가 쯤에 박혀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어머님도 끝에는 손자도 아쉽고 손녀도 아쉽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나 역시 아들을 원했지만, 그 까닭 중에는 일단 아들을 첫째로 낳고 나면 '꼭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사라질 거라는 점도 있었다.

솔직한 내 마음만 생각하자면, 나도 모르게 아들을 바랐던 마음은 그래도 예전보다 덜해졌다. 사실 거의 사라졌다. 8월과 9월에 남편과 장거리 여행을 할 일이 있었는데, 높은 하늘과 푸른 숲, 시원한 물 등 자연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욕심내는 것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그리고 내 유년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1남 1녀' 중 장녀다. 아니다! 내가 누나니까 '1녀 1남'이라고 해야지. 내가 태어나기까지 엄마가 겪은 우여곡절을 몇 가지 들었다. 부모님이 결혼하신 후 어렵지 않게 내가 생겼는데, 문제는 아버지 집안은 자손이 귀했고, 대부분의 옛날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우리 할머니도 아들을 바라셨다고 했다. 그 바람 덕인지 엄마의 배 모양이나 식성이 다들 '아들이네' 할 만큼이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나를 낳으러 병원에 간 날, 손자를 보시겠다며 할아버지와 함께 경상북도 영주에서 경기도 부천의 병원까지 한걸음에 오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후 "공주님입니다"라는 말에 뒤도 안 돌아보시고 바로 엄마 아빠의 집으로 가버리셔서, 엄마는 병원에 오래 있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셨다고 했다. 예전엔 그냥 '에이, 할머니 너무하셨네' 쯤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홈런이를 갖고 보니 엄마가 많이 서럽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도 섭섭하다. 내가 태어났는데 반겨주지도 않으시고.

딸이라 억울했던 마음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엄마는 산후조리는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는 처음에 엄마 주려고 사오신 꿀을 엄마는 주시지도 않고, 그 꿀에 인삼을 재워서 아빠를 주셨다(산모가 인삼을 먹으며 젖이 마르기 때문에 엄마는 그걸 못 드셨을 거다). 그리고 21개월 후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고모, 작은아버지가 많이 예뻐해 주셨지만 그래도 난 엄마의 사랑이 무척 고팠던 것 같다. 이모들과 걷다가 이모들이 차조심 하라고 하면 "엄마는 나 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을 텐데 뭐" 하고 말해 이모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엄마나 할머니께서 직접적으로 차별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섭섭한 마음들 때문에 지금 나도 아들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병원에 갈 때는 임신 후 처음으로 남편과 가기로 해서 더 설렌다.

ⓒ sxc

홈런이는 성에 대한 열등감 없이 자라게 하고 싶다. 이제 이런저런 내 마음 안팎의 이유로 아들을 바라온 마음은 구겨서 휴지통에 버릴 테다.

"홈런아, 엄마는 홈런이가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상관없어. 홈런이가 우리한테 고맙게 와줬는데 엄마가 욕심 좀 냈었어. 다른 건 바라지 않을 테니 홈런이는 건강하게 지내기만 하렴."

성별이 어떻든지 상관없지만 몹시 궁금하기는 하다. 나 말고도 홈런이의 성별을 '대놓고' 궁금해하는 사람은 또 있다. 지난번 글에서, 무서운 웹툰을 보여줘서 날 두려움에 떨게 했던 '웹툰 언니'와 우리 엄마다. 웹툰 언니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선물을 해주고 싶으니 성별을 알게 되면 제일 먼저 알려달라고 했다.

엄마도 같은 이유로 무척 궁금해한다. 한 달 전 같이 산부인과 병원에 갔을 때도 성별을 물어보시겠다고 벼르고 가셨는데, 의사선생님이 말해주시지 않아 크게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얼마 전 다른 사람 아이의 돌 선물을 살 일이 있어 엄마와 같이 갔는데, 이것저것 둘러보시면서 이것 사줄까 저것 사줄까 하시다가 "이번에 병원 가서 알아오겠지?" 하며 눈에 힘을 주셨다. 뭐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에 병원에 갈 때는 임신 후 처음으로 남편과 가기로 해서 더 설렌다. 초음파 영상은 집에서 같이 봐왔지만 검사하는 자리에서 직접 보는 느낌은 다르니까 남편과 같이 가서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특히 홈런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의 그 전율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말로 설명해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정기 건강검진 중에 홈런이를 처음 만나게 돼서, 검진을 마치고 출근해야 했던 남편은 그날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출근한 뒤에는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이 흘러 처음 홈런이를 실시간(!)으로 만나는 날이 될 테니 남편에게도 잊지 못할 날이 되겠지?

병원에 갔다 와서는 옷을 좀 사러 가야겠다. 두 달 동안 체중이 1.5kg 늘어서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말이긴 하지만 이번엔 진짜다. 배를 압박하는 옷을 입으면 밤에 배가 쑤셔 괴로우니 이젠 정말 임부복을 장만해야 할 때 같다. 홈런이도 보고 옷도 사고 이날은 좀 바쁜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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